지명유래

손양면의 유래

양면은 군소재지로부터 남방 4㎞지점에 위치하고 1914년에 동남양면을 합하여 손양면이라 명칭하였다. 오대산맥이 남대천에서 용을 돌려 동면평과 상운평의 양 평야를 형성하였으니 토질이 肥沃하여 양양의 곡창이라고 할만치 農民住着의 천연적인 환경이 賦與되고 있거니와 水山烽燧臺와 祥雲古亭은 遺址만이 남았으면서 前代의 제도와 面貌를 연상케하며 雙湖의 飛鶴과 鰲峰의 蜃氣樓는 他界에서 볼 수 없는 진경이다. 과거 24개리로 구성되었던 當面은 해방후 1개리(부소치리)가 줄어 현재 23개리로 되어있다.

하왕도리(下旺道里)

고려조시에 板橋里의 부속동으로 있었는데 이조세조대왕께서 月精寺로부터 낙산사에 行幸도중 이곳에 있는 淸風亭에 逍遙하셨으며 王道里라 稱하였다가 그후 다시 1개리명에 王字를 붙임은 왕께 不遜하다는 고을 원의 뜻을 따라 旺字로 개칭하였다.

간리(間里)

약 200여년전부터 동쪽에 송현리 남쪽에 왕도리 북쪽에 월리가 있는데 그 사이에 형성된 부락이므로 간리라하고, 속칭 "새잇골"이라고도 한다.

송현리(松峴里)

옛날에 수십주의 大松이 뒷고개에 울창하였기에 松峴里라고 칭하였다. 본래 양양군 南面 지역으로서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이말(間村)정자동조구터를 병합하여 송현리라하여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수여리(水餘里)

양양남대천의 물구비가 휘어 닿는곳이며 물이 풍부하고 경 아름다운 곳으로 물이 모자라는 때가 없다 하여 수여리라 명명하였는데 속칭 "물넘이" 또는 "무내미"라고도 한다. 본래 동면인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당뒷말, 동구안, 바구매, 버덩말, 솔말, 흥덕말을 병합하여 수여리라하여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금강리(金崗里)

고려초에 先人이 地中之石이 如金見之故로 金崗里라 칭하였다.

가평리(柯坪里)

약200여년전까지 마을주위에 갈풀이 많이 자생하므로 柯坪里라 칭하였는데 속칭 "갈벌"이라고도 한다. 본래 양양군 동면의 지역인데 1916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송전리(松田里)

동쪽은 大海에 연접하고 동서북에는 松樹茂盛하여 四時長靑 수려한 풍 둘러 있는 한 가운데 자리한 집단마을로 주위에는 크고 작은 개와 웅덩이가 많아 舊名은 松湖里(350여년전)로 칭하다가 그후(연대미상) 松田里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속칭 「솔밭」이라고도 한다.

오산리(鰲山里)

前面大海邊에 鰲峯이 聳立하므로 오산리라고 한다. 일명 鰲舞라고 하는데 파도가 치는날 멀리서 바라보면 鰲峯이 춤추는 듯 한다하여 이름하였다. 또한 오산봉의 모양이 자라처럼 생겼다하여 명명하였다고도 하는데 본래 동면지역이 였으나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수산리(水山里)

前面은 大海요 後面은 산이 있으므로 수산리라 칭하며, 일명 수무라고도하는데 본래 양양군 동면 지역으로 있다가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학포리(鶴浦里)

약500여년전에 赤城洞이라고 칭하였는데 正祖大王時에 朴進士가 송전리앞에 一湖가 있으므로 호명을 쌍호라 칭하고 백학이 翔集함으로 학포리라 칭하였다. 金三淵 東遇記에 襄陽府 東方十里 九峯山 아래 赤城洞이 있는데 園林이 淸秀하고 湖山이 華麗하며 花朝月夕에 풍광이 幽媚하다고 절찬하였다. 九峯山 아래에는 赤城洞이라는 三字石刻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도화리(桃花里)

옛날에는 桃木이 많이 있어 그 풍경이 좋아 그 이름을 도화리라고 한다.

동호리(銅湖里)

동쪽에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의 빛이 銅色같았으므로 동호리(구리개, 굴개)라고 칭한다.

상운리(祥雲里)

동리지형이 走馬形局이고 여운포리 岩(국암, 누룩바위)을 向하였으며 일출시에는 상운이 長浮하였으므로 상운리라 하였다.
또 옛날 상운리 어디엔가에 상운사라는 절이 있었다하여 상운리라고 칭하였다고도 한다. 본래 양양군 남면지역으로 조선조때 상운역이 있어 역말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터, 정잣말을 병합하여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여운포리(如雲浦里)

본래는 연포였었는데 발음의 착오로 지금은 여운포리라고 부른다. 본래 양양군 남면 지역으로서 연개가 있으므로 연개 또는 여운포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하양혈리(下陽穴里)

지형이 迂澳하여 양기를 獨受하므로 陽穴이라고 칭하였다. 1920년도에 상하 2개리로 분리하여 하양혈리가 되었다.

상양혈리(上陽穴里)

1920년 각리 행정구역 개편시 하양혈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이름하였다.

밀양리(密陽里)

약 400년전부터 坡平尹氏가 거주한 곳인데 둘레가 洞嶺에 쌓인 南向으로 겨울이 늦게들고 봄이 일찍 와서 기후가 밀온하므로 밀양리라고 함. 본래 양양군 남면의 지역으로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으며 예전에 행남학교 (杏南學校)가 있었으며 행남(杏南)이라고도 칭하였다.

상왕도리(上旺道里)

당초 조선조때 세조대왕께서 지나간 마을이라 하여 "왕도리"라 하였는데, 1913년 동남양면을 병합하여 손양면으로 개명하고 각리 행정구역 개편시 왕도리를 上下로 구분할 때 약 130년전 海雲先生이 서당을 창설하여 "서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上字를 붙여 이름하였다.

와리(瓦里)

약 200여년전에 孫氏가 居住할 때 土瓦工場을 설치하였다하여 瓦里라 칭한다.

우암리(牛岩里)

동구에 牛 흡사한 岩石이 있으므로 우암리라고 한다.

주리(舟里)

약500년전 林氏의 창건으로 동리형태가 배형국과 같다하여 舟里라고 칭하였다. 풍수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항구처럼 생겼기 때문에 마을 아래에 내려가 살면 死하고 중턱에 올라와 살면 生한다하여 대부분의 주택이 마을 산쪽에 많이 치우쳐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을아래 주민은 가세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남양리(南陽里)

고려조에는 板橋里 其後에는 揷存里로 개칭하였는데 서기 1955년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석계리, 부소치리를 병합하여 남양리라 하였다. 본래 양양군 남면의 지역으로 주위 산림에 섶이 무성하여 섶좋은리라 하던 이름이 변음되어 삽존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손양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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